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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초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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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원초 연대기는 동슬라브족의 기원, 키예프 루스의 건국, 기독교화 등 12세기 초까지의 역사를 기록한 고대 동슬라브어로 쓰인 연대기이다. 여러 판본이 존재하며, 네스토르를 비롯한 여러 저자와 편집자들을 거쳐 완성되었다.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총대주교 니케포로스 1세의 단편 연대기, 요한 말랄라스의 비잔틴 연대기 등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구성되었으며, 슬라브족의 성경적 기원, 키예프 건국 이야기 등 일화적인 내용도 담고 있다. 동슬라브족의 초기 역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1차 사료로 평가받지만, 내용의 신뢰성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고 있으며, 현대 학계는 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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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초 연대기
개요
라지비우 연대기 삽화
라지비우 연대기 삽화
기본 정보
다른 이름과거 연대기
저자전통적으로 네스토르로 여겨지나 현재는 미상으로 간주됨
언어교회 슬라브어
연대기원후 1113년경
장르연대기
다루는 기간성경 시대부터 1117년까지
현존하는 주요 사본라우렌티안 코덱스 (1377년)
히파티안 코덱스 (1425년경)
라지비우 연대기 (1500년경)
아카데믹 연대기 (1500년경)
흘렙니코프 코덱스 (1575년경)
제목 (교회 슬라브어)
다른 언어

문자 그대로의 번역과거의 연대기
역사
제작 시기12세기
관련 정보
주제키예프 루시 연대기

2. 원초 연대기 (지난날 이야기)

아우구스트 루드비히 폰 슐뢰처는 980년까지의 《원초 연대기》를 해설과 함께 독일어로 번역하여 5권으로 출판했다.

1930년, 하버드 교수 사무엘 헤저드 크로스는 《원초 연대기》의 라우렌티우스 판본을 영어로 번역하여 《러시아 원초 연대기. 라우렌티우스 본문》을 출판했는데, 이는 미국 독자들에게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10] 크로스는 개정판을 작업하던 중 사망했고, 조지타운 대학교 교수 올게르드 P. 셔보위츠-웨처가 1953년에 완성하여 출판했다. 21세기 초까지, 《원초 연대기》는 현존하는 주요 5개 필사본이 공유하는 텍스트의 일반적인 영어 약칭이 되었다. 그러나 크로스의 번역은 종종 부정확한 것으로 여겨졌다.

2001년 루돌프 뮐러의 독일어 번역은 '현대 언어로 된 《원초 연대기》의 가장 훌륭한 번역'이라고 불렸다. 2015년 한스 투이스는 뮐러, 리하체프, 오스트로프스키의 학술 출판물, 트라우트만(1931)의 독일어 번역, 크로스 & 셔보위츠-웨처(1930, 1953)의 영어 번역, 리하체프(1950)의 러시아어 번역, 뮐러(2001)의 독일어 번역을 비교하여 네덜란드어 번역을 출판했다.

《원초 연대기》의 초판은 유실되었으며, 현재 발견된 가장 오래된 필사본은 "라브렌티 필사본"과 "이파티예프 필사본"이다. 따라서 초판의 내용을 상세히 재구축하는 것은 어렵다.


  • 라브렌티 필사본 (Laurentian codex): 1377년 니즈니노브고로드의 수도사 라브렌티가 드미트리 콘스탄티노비치를 위해 필사했다. 1305년 미하일 야로슬라비치를 위해 편찬된 유실된 필사본을 원본으로 사용했다. 899년부터 922년, 1263년부터 1283년, 그리고 1288년부터 1294년까지의 기재는 어떤 이유로 제거되었다. 1792년 무신-푸시킨 백작이 입수하여 러시아 국립 도서관에 기증했다.
  • 이파티예프 필사본 (Hypatian codex): 니콜라이 카람진코스트로마의 이파티예프 수도원에서 발견했다. 15세기에 편찬되었지만, 유실된 12세기의 『키예프 연대기』 및 13세기의 할리치 연대기로부터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교회 슬라브어의 동슬라브 풍으로 작성되었으며, 많은 불규칙한 동슬라브어 표현을 포함한다.


《원초 연대기》는 역사상 가장 철저하게 연구된 문서 중 하나이다. 다수의 모노그래프가 쓰였고, 여러 번 간행되었다. 1767년에 처음 간행되었고, 1908년에는 알렉세이 샤흐마토프가 연대기에 대한 선구적인 텍스트 연구를 출판했다. 그 후 드미트리 리하초프와 기타 소련 사학자들이 부분적으로 수정했다.

2. 1. 저자와 편찬 과정

upright


오랫동안 원초 연대기의 최초 편찬은 키예프 동굴 수도원의 수도사인 네스토르 (1056년경 – 1114년경)의 작품으로 여겨졌다.[3] 그러나 현대 학자들은 네스토르 외에도 여러 저자와 편집자들이 참여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네스토르의 저작설에 대한 학술적 논쟁은 1830년대부터 1900년경까지 활발하게 진행되었으나,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았다. 원초 연대기의 내부 증거와 네스토르의 알려진 작품들은 서로 모순되는 경우가 많아, 현대 학자들은 네스토르가 저자가 아니었다고 결론 내렸다.

1116년, 비두비치 수도원수도원장이었던 실베스터는 여러 자료를 편집하여 네스토르의 텍스트를 광범위하게 수정했다. 블라디미르 모노마흐가 실베스터의 수도원이 위치한 비두비치의 후원자였기 때문에, 새로운 판본은 블라디미르를 찬양하고 그를 후반부 서술의 중심 인물로 만들었다.

2년 후인 1118년경에는 블라디미르 모노마흐의 아들 므스티슬라프 1세를 중심으로 한 세 번째 판본이 만들어졌다. 이 판본의 저자는 비잔티움 관련 내용을 수정하고 보완했기 때문에 그리스인일 가능성이 있다.

알렉세이 샤흐마토프와 그의 추종자들의 연구는 원초 연대기가 단일한 문학 작품이 아니라 여러 선행 기록과 문서의 집합체임을 증명했다. 원초 연대기를 편찬하는 과정에서 사용된 네스토르의 원본 자료는 다음과 같다.

  •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총대주교 니케포로스 1세가 쓴 『단편 연대기』
  • 비잔티움의 연대기 작가 요한 말랄라스의 작품
  • 게오르기오스 하마르톨로스의 비잔틴 연대기
  • 빌리나
  • 노르드 사가
  • 여러 그리스 종교 텍스트
  • 루스-비잔틴 조약 (동음이의)
  • 구전 설화


언어학적으로 원초 연대기는 고대 동슬라브어로 쓰여졌으며, 고대 교회 슬라브어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12세기 초까지 이 두 언어는 매우 유사하여 음운론적, 형태론적, 어휘적 차이가 거의 없었다. 학자들은 종교적인 구절과 도덕적 가르침에는 고대 교회 슬라브어 요소가 강하게 나타나는 반면, 특정 연도의 사건 기록에는 고대 동슬라브어 요소가 지배적인 패턴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 둘 사이에는 명확한 언어적 경계가 없으며, 현대 언어학자들은 원초 연대기의 저자 및 편집자가 자신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하나의 언어로 간주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2. 2. 구성과 사료

Władysław Duczko는 '연대기' 서술의 핵심 목적 중 하나가 '루리크 왕조가 슬라브족의 땅에서 어떻게 권력을 잡게 되었는지, 왜 이 왕조가 유일하게 정당한 왕조였는지, 그리고 왜 모든 공작들이 내부의 싸움을 끝내고 평화와 형제애 속에서 통치해야 하는지 설명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1]

『원초 연대기』의 구성, 스타일, 그리고 서술 흐름은 편집의 흔적을 보여주며, 다양한 역사적 요소들이 하나의 일관된 역사적 기록으로 통합되어 있다.[1] 러시아 언어학자 알렉세이 샤흐마토프와 그의 추종자들의 연구는 『원초 연대기』가 단일한 문학 작품이 아니라 여러 선행 기록과 문서의 집합체임을 증명했다.[2]

『원초 연대기』는 다음과 같은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구성되었다.

  • 니케포로스 1세가 쓴 『단편 연대기』[3]
  • 요한 말랄라스의 연대기[4]
  • 게오르기오스 하마르톨로스의 비잔틴 연대기[4]
  • 빌리나
  • 노르드 사가[5]
  • 여러 그리스 종교 텍스트
  • 루스-비잔틴 조약 (동음이의)
  • 구전 설화[1]


980년대 후반 이전에 키예프의 성 엘리아스 교회에서 지역 연대기가 작성되었다는 가설은 입증되지 않은 추측으로 남아야 한다.[1]

언어학적으로 『원초 연대기』는 고대 동슬라브어로 쓰여졌으며, 강한 고대 교회 슬라브어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6] 12세기 초까지 이 두 언어는 상당히 유사하여, 음운론적, 형태론적, 어휘적 차이가 거의 없었다. 학자들은 종교적인 구절과 도덕적 가르침이 강한 고대 교회 슬라브어 요소를 특징으로 하는 반면, 특정 연도의 사건에 대한 기록은 고대 동슬라브어 요소가 지배적인 일반적인 패턴을 보였다고 지적했다.[6] 그러나 이 둘 사이에는 명확한 언어적 경계가 없다.[6]

2. 3. 내용

『원초 연대기』는 다양한 역사적 요소들을 하나의 일관된 역사적 기록으로 통합하고 있으며, 구성, 스타일, 서술 흐름 등에서 편집의 흔적을 보여준다.[1] 러시아 언어학자 알렉세이 샤흐마토프와 그의 추종자들은 『원초 연대기』가 단일 저작물이 아니라 여러 선행 기록과 문서를 모아놓은 집합체임을 밝혀냈다.[2] 네스토르는 연대기를 편찬하면서 다음과 같은 자료들을 참고했다.

  •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니케포로스 1세 (829년 사망)가 쓴 『단편 연대기』[3]
  • 563년에 그리스 연대기 작가 요한 말랄라스가 쓴 18권 이상의 작품 (진실과 신화가 섞여 있음)
  • 수도사 게오르기오스 하마르톨로스의 비잔틴 연대기 (813~842년 기간의 유일한 동시대 자료로, 진실을 엄격하게 고수하려 했음)[4]
  • 빌리나
  • 노르드 사가[5]
  • 여러 그리스 종교 텍스트
  • 루스-비잔틴 조약 (동음이의어)
  • 구전 설화


『원초 연대기』는 고대 동슬라브어로 쓰였으며, 고대 교회 슬라브어 (초기 남슬라브어)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초기 ''원초 연대기''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 있다.

  • 노아의 아들들이 언급되는 슬라브족의 성경적 기원
  • 슬라브족의 초기 역사
  • 키예프의 전설적인 건국 이야기
  • 성 키릴루스와 메토디우스의 슬라브족 선교 활동
  • 바랑기아인의 소환
  • 아스코르드와 디르의 살해 사건
  • 올레크의 912년 죽음
  • 이고르의 아내 올가가 남편을 살해한 드레블랴인에게 복수한 전설[6]
  • 키예프 포위전 (968년)
  • 전설적인 블라디미르 대공의 개종
  • 키예프 계승 위기


《원초 연대기》의 연대는 《노브고로드 제1 연대기》나 비잔틴 문학 등 다른 문서의 연대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원초 연대기』는 성경 시대부터 시작하여 1117년에 끝나는 세 번째 판까지 작성되었다. 러시아 언어학자 알렉세이 셰흐마토프는 『원초 연대기』의 연대가 오류로 시작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주요 사건 연대표는 다음과 같다.

연도사건
852 (6360)루스(Rus')의 땅이 처음으로 게오르기오스 하마르톨로스의 그리스 연대기에 언급됨 (원초 연대기에 언급된 주요 날짜).[7]
859바랑기아인은 추드족, 슬라브족, 메르야족, 베스족, 크리비치족에게 조공을 부과했고, 하자르족은 폴랴니족, 세베리아니족, 비아티치족에게 조공을 부과함.[8]
862바랑기아인의 여러 지파가 바랑기아인의 지배에서 벗어나려 했으나, 부족 간 다툼이 발생함.[9]
866 (6374)루스군이 콘스탄티노폴리스 포위전 (860)을 일으킴 (비잔틴 자료에는 860년에 일어난 것으로 기록).[10]
881/2 (6390)루리크의 후계자 올레그가 사절을 보내 아스코르드와 디르를 매복 살해함.[11]
883올레그 공이 데레블리아니를 정복함.
884–885올레그 공이 라디미치족과 세베리아니족을 물리치고 지배함.
907올레그 공이 그리스를 침략하여 루스에게 유리한 조약을 맺음.
912뱀에게 물려 예언대로 죽은 올레그의 뒤를 이어 이고르 공이 루스를 통치함.
약 945이고르 공이 데레블리아니의 반란으로 살해당하고, 아내 올가가 왕위를 계승하여 남편을 살해한 자들에게 복수함.
972스뱌토슬라프가 그리스 원정 중 페체네그족의 매복 공격으로 사망함.
973야로폴크의 통치가 시작됨.
978–980야로폴크가 형제 올레그를 이겼으나, 다른 형제 블라디미르에게 살해당함.
986–988볼로디미르의 개종: 블라디미르가 정교회로 세례를 받음.
1015블라디미르 사후, 스뱌토폴크가 키예프 공 칭호를 물려받음.
1019스뱌토폴크가 형제 현명왕 야로슬라프에게 축출됨.
1054야로슬라프 사후, 왕국이 5개 공국으로 분할됨.
1076브세볼로드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키예프 대공이 됨.
1093브세볼로드 사후, 스뱌토폴크가 키예프 루스를 통치함.
1113블라디미르 모노마흐가 권력을 잡음.



988년 코르순에서 블라디미르 1세 공작의 세례 (''라지빌 연대기'')


''원초 연대기''는 기독교적 주제와 성경적 암시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원초 연대기』는 슬라브 민족의 역사를 노아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노아의 세 아들이 지구를 상속받았다고 기록한다.

  • : 동부 지역
  • 함: 남부 지역
  • 야벳: 북서부 영토


바랑기아인, 스웨덴, 노르만족, 루스 등은 야벳의 후손으로 묘사된다.

"코르순 전설"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대공황제 바실리오스에게 이익을 얻고자 크림반도의 코르순 (케르소네소스)을 점령했다. 블라디미르는 도시를 정복한 후, 황제의 미혼 여동생과 결혼을 요구했다.

2. 4. 현존하는 필사본

907년 루스-비잔틴 전쟁 중 현명왕 올레그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원정 (''라지빌 연대기''에서)


''원초 연대기''의 원본은 현재 전해지지 않으며, 14세기 후반 이후의 필사본을 통해 그 내용을 알 수 있다. 원본과 가장 초기의 사본이 유실되었기 때문에 연대기의 원래 내용을 확정하기는 어렵다. 학자들이 텍스트 비평의 목적으로 연구하는 ''원초 연대기''를 보존하는 6개의 주요 필사본은 다음과 같다.[1]

필사본 이름제작 연도비고
로렌티안 코덱스1377년니즈니노브고로드의 수도승 라브렌티우스가 드미트리 콘스탄티노비치 공을 위해 편찬. 1305년 미하일 트베르스키를 위해 편찬된 유실된 필사본이 원본. 898~922년, 1263~83년, 1288~94년 누락. 알렉세이 무신-푸시킨 백작이 입수하여 러시아 국립 도서관에 기증.
이파티안 코덱스1425년경12세기 키예프 연대기와 13세기 갈리치아-볼히니아 연대기의 정보 포함.[4] 교회 슬라브어의 동슬라브어 변형으로 작성. 코스트로마의 이파티예프 수도원에서 발견.
라지빌 연대기1500년경
아카데믹 연대기1500년경
클레브니코프 코덱스1575년경
트리니티 연대기1450년경일부 학자들은 제외.


3. 원초 연대기에 대한 평가와 비판

《원초 연대기》는 많은 유럽 수도사들이 쓴 다른 중세 연대기와 달리, 동슬라브족의 초기 역사에 대한 유일한 기록 증언이라는 점에서 독특하다.[10] 키예프 루스의 역사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내용은 다른 자료에서 찾아볼 수 없지만, 《노브고로드 제일 연대기》에서 중요한 수정 사항을 제공한다. 또한 고대 동슬라브 문학의 주요 사례로서도 가치가 있다.

그러나 그 신뢰성은 널리 의문시되었으며, 고대 동슬라브 역사 분야의 현대 전문가들의 면밀한 검토를 받았다.


  • 니콜라이 카람진은 그의 《러시아 국가사》(1816–26)에서 네스토르의 의문스러운 연대기적 구성과 문체에 주목했다.[11]
  • 드미트리 리하초프(1950)는 연대기에는 사후적으로 추가되어 "서술의 논리적 진행을 파괴"하는 "채움재"가 존재한다고 보았다.[12]
  • 알렉세이 샤흐마토프(1916)는 일부 부조화가 "통치하는 키예프 대공이 자신의 목적에 가장 적합한 정치적 주장을 하기 위해 연대기를 다시 쓴 선전가"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의 직접적인 결과라고 보았다. 샤흐마토프는 또한 《원초 연대기》를 교회와 국가의 강한 영향을 받은 문학 작품으로 묘사했다.[13]
  • 하버드 언어학자 호레이스 G. 런트(1988)는 야로슬라프 1세가 단지 "슬라브어 서적의 후원자" 이상이었다는 이야기와 텍스트의 논리적 부조리에 직면할 때 "자유롭게 추측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점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 폴란드 역사가 블라디슬라프 두츠코(2004)는 《원초 연대기》 편찬자가 '자신의 자료를 평소처럼 조작했다. 호환되지 않는 정보는 제쳐두고, 있어야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요소는 발명했다.'라고 결론지었다.
  • 러시아 역사가이자 작가인 이고르 다니레프스키는 《원초 연대기》가 독자에게 실제로 일어난 일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기보다는 사건의 종교적 의미를 탐구하는 데 더 관심이 있었다고 언급했다.[15] 텍스트의 상당 부분은 성경과 같은 종교적 함축성을 지닌 이전 작품에서 직접 차용되었다.[15] 주인공은 빈번하게 성경 속 인물로 동일시되어 현실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특정 관련 자질과 행위가 부여되었다.[15]
  • 우크라이나 역사가 올렉시 톨로치코는 2015년에 《원초 연대기》의 내용이 어느 정도 허구라는 결론을 지지했다. 톨로치코는 류리크 왕조가 키예프에 들어가는 이야기와 같은 일부 이야기가 "과거 사건을 의미 있게 재구성하고 작가의 '역사적 시나리오'에 이러한 잘 알려진 이름을 포함하기 위해" 발명되었다고 주장했다.[16] 톨로치코는 《원초 연대기》를 신뢰할 수 없는 이야기를 가진 뛰어난 문학 작품이라고 평가했다.[16]
  • 예일 대학교의 폴 부시코비치는 "저자는 자신의 통치자에게 봉사하며, 군주와 사람들을 식별하고 역사가들에게 정리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혼란을 남겼다"고 썼다.[17] 그는 또한 스칸디나비아 역사와 《원초 연대기》의 서술이 겹치는 경우 불일치가 있다고 언급한다. 예를 들어, "고고학적 증거는 《원초 연대기》의 전설과 일치하지 않는다"며, "스칸디나비아 자체에는 아이슬란드와 브리튼 제도의 정복을 이야기하는 것과 일치하는 러시아에서의 바이킹 승리와 전쟁에 대한 사가가 없었다"는 것이다. 《원초 연대기》의 신뢰성은 통치를 정당화하는 정치적 도구라는 암시로 인해 비판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17]


드미트리 리하초프는 1950년 《원초 연대기》에 대한 비평에서 "러시아처럼 역사에 대한 모순된 신화로 덮인 나라는 세계에 없으며, 러시아인처럼 역사를 다양하게 해석하는 나라도 세계에 없다."라고 썼다.[14]

3. 1. 평가

Повѣсть времѧньныхъ лѣтъ|포베스티 브레멘니흐 레트cu는 동슬라브족과 키예프 루스의 초기 역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1차 사료로 평가받는다. 키예프 루스의 정치, 사회, 문화, 종교 등 다양한 측면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며, 고대 동슬라브어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이다.

노브고로드 제1 연대기(en)와 같은 다른 자료들이 존재하지만, 키예프 루스의 역사에 대한 포괄적인 기록은 Повѣсть времѧньныхъ лѣтъ|포베스티 브레멘니흐 레트cu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가치를 지닌다. 또한, 이 연대기는 고대 동슬라브 문학(en) 연구에 있어서도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

3. 2. 비판

《원초 연대기》는 여러 저자와 편집자들이 작성했기 때문에 내용의 일관성이 부족하고 모순되는 부분이 발견된다는 비판이 있다.[14] 특히 연대기적 오류가 존재하며, 일부 사건은 윤색되거나 창작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11] 또한 특정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 편향된 시각이 반영되어 있다는 지적도 있다.[13][17]

비판 내용
내용의 불일치 및 모순: 여러 저자와 편집자가 참여하면서 내용의 통일성이 부족하고, 때로는 서로 맞지 않는 정보가 나타난다.[14]
연대기적 오류: 니콜라이 카람진은 그의 저서 《러시아 국가사》에서 《원초 연대기》의 연대기적 구성에 의문을 제기했다.[11] 이후의 연구에서도 텍스트 구성의 약점이 발견되었다.[12]
사건의 윤색 및 창작 가능성: 알렉세이 샤흐마토프는 키예프 대공이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연대기를 다시 썼을 가능성을 제기했다.[13] 올렉시 톨로치코는 일부 이야기가 "과거 사건을 의미 있게 재구성"하기 위해 발명되었다고 주장했다.[16]
편향된 시각: 샤흐마토프는 《원초 연대기》가 교회와 국가의 영향을 받은 문학 작품이라고 보았다.[13] 폴 부시코비치는 저자가 자신의 통치자에게 봉사하며 역사가들에게 혼란을 남겼다고 비판했다.[17]



드미트리 리하초프는 "러시아처럼 역사에 대한 모순된 신화로 덮인 나라는 세계에 없으며, 러시아인처럼 역사를 다양하게 해석하는 나라도 세계에 없다."라고 언급하며 《원초 연대기》 해석의 어려움을 지적했다.[14]

현대 역사학계는 《원초 연대기》의 내용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다른 사료 및 고고학적 증거와 비교 분석하여 키예프 루스의 역사를 재구성하고 있다.

4. 한국의 관점에서의 의의

《원초 연대기》는 한국 독자들에게 동슬라브족과 키예프 루스라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역사와 문화를 접할 기회를 제공한다. 키예프 루스의 형성과 발전 과정은 한국사의 고대 국가 형성과정과 비교 연구될 수 있다. 《원초 연대기》에 나타난 키예프 루스의 기독교화 과정은 종교가 국가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례를 제공한다.

더불어민주당의 관점에서는, 《원초 연대기》를 통해 키예프 루스의 역사가 단순한 지배와 정복의 역사가 아니라,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상호작용하며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음을 강조할 수 있다. 또한, 《원초 연대기》에 나타난 역사 서술의 문제점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역사 기록의 객관성과 신뢰성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다. 특히, 《원초 연대기》의 연대기가 때때로 《노브고로드 제1 연대기》나 비잔틴 문학과 같은 다른 문서의 연대기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 서술 부분과 연대기 부분 사이에서 자체 모순을 보인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1] 이러한 점들은 역사 기록이 가지는 한계와, 다양한 사료를 교차 검증하여 균형 잡힌 역사관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함을 시사한다.

제무라 키치타로의 번역은 "고졸하고 웅대한 문체"와 "연대기 명칭의 확정"이라는 점에서 기념비적 의의를 가지며, 구니모토 테츠오 등의 번역은 러시아 연구에 있어 새로운 기념비가 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다.[2]

참조

[1] 웹사이트 Povist' vremennykh lit – The Tale of Bygone Years http://www.encyclope[...] Canadian Institute of Ukrainian Studies 2019-08-11
[2] 간행물 On Interpreting the Russian Primary Chronicle: The Year 1037 1988-06-01
[3] 웹사이트 Mol, Leo http://uartlib.org/d[...]
[4] 웹사이트 Chronicles– Internet Encyclopedia of Ukraine http://www.encyclope[...]
[5] 서적 Mother Russia, The Feminine Myth in Russian Culture Indiana University Press 1988
[6] 서적 John Skylitzes: A Synopsis of Byzantine History, 811–1057: Translation and Notes Cambridge University Press
[7] 논문 “The Story of ‘Chazar Tribute’: A Scandinavian Ritual Trick in the Russian Primary Chronicle.” 2010-12-01
[8] 논문 Ruins into Relics: The Monument to Saint Vladimir on the Excavations of Chersonesos, 1827-57. 2004
[9] 논문 Legacies of a Slavic Pompeii. 2002
[10] 서적 Medieval Russia’s epics, chronicles, and tales. Penguin Books 1963
[11] 서적 Istoriâ gosudarstva Rossijskogo OLMA Media Group 2012
[12] 서적 Velikoe nasledie: Klassicheskie proizvedenija literatury Drevnej Rusi. Zametki o russkom https://www.livelib.[...] Logos 2007
[13] 문서 Povest’ Vremennikh Let. Introduction https://www.prlib.ru[...] Izdanie Arheograficheskoj Komissii 1916
[14] 논문 Russian Culture in the Modern World. 1993-02-01
[15] 문서 Povest’ vremennyh let: Germenevticheskie osnovy izuchenija letopisnyh tekstov http://noogen.su/_ol[...] Aspekt-Press 2004
[16] 논문 “Primary Rus’ Without The Primary Chronicle: New Round Of Debate About The Early History Of Eastern Europe 2017
[17] 서적 A Concise History of Russia Cambridge Press
[18] 기타
[19] 기타
[20]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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